[10편] 뉴욕증시 직상장(Direct Listing) – 전통적 IPO를 거부한 이유와 월가의 시선

 2020년 9월, 자본 시장의 중심지인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신비롭고 한편으로는 가장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던 팔란티어가 마침내 장막 뒤에서 나와 기업 공개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안보 기밀을 다루던 유령 기업이 제도권 자본 시장으로 들어온다는 소식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이들이 선택한 '상장 방식'이었습니다.

팔란티어는 수조 원대의 몸값을 자랑하는 유니콘 기업들이 으레 거치는 전통적인 기업공개(IPO) 방식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대신 투자은행(IB)들의 잔치로 불리는 관행을 비웃듯 '직상장(Direct Listing)'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선택했지요. 월가의 금융 엘리트들과 실리콘밸리의 이단아가 자본의 룰을 두고 정면충돌했던 그 뜨거웠던 상장 막전막후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1. 투자은행의 돈잔치 IPO, 피터 틸이 판을 뒤엎은 이유

전통적인 IPO 방식은 기업이 상장할 때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을 주관사로 선정합니다. 이 은행들은 상장 전 전 세계 큰손들을 찾아다니며 "이 회사 주식을 얼마에 사겠냐"고 흥정하고 공모가를 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들은 천문학적인 수수료를 챙기고, 그들이 관리하는 VIP 고객(기관투자자)들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먼저 배정해 줍니다. 상장 첫날 주가가 폭등하면 이 기관들은 엄청난 차익을 누리지만, 정작 피땀 흘려 회사를 키운 창업 멤버나 일반 개인 투자자들은 그 과실에서 소외되기 일쑤였습니다.

팔란티어의 설계자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CEO는 이러한 월가의 오랜 카르텔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왜 우리 주주들이 가져가야 할 가치를 월가 은행가들의 배를 불리는 데 써야 하느냐"는 의문이었죠.

마침 팔란티어는 오랜 정부 계약과 민간 파운드리 플랫폼의 안착으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IPO처럼 신주를 발행해 당장 급하게 투자금을 끌어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팔란티어는 주관사 거쳐 신주를 파는 대신, 기존 주주들이 가진 주식을 증시에 그대로 올려 일반 대중과 직접 거래하게 만드는 '직상장'을 선택했습니다. 자본 시장의 중개인을 건너뛰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D2C(Direct to Consumer) 방식을 금융에 도입한 셈입니다.

2. 실리콘밸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알렉스 카프의 독설

상장 당일, 알렉스 카프 CEO가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과 인터뷰는 월가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세련된 경영자들의 언어 대신, 뉴욕 금융권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카프는 "주주의 가치를 단기적인 분기 실적 압박으로 재단하는 월가의 문화는 실리콘밸리의 장기적인 기술 혁신을 망친다"고 일갈했습니다. 팔란티어가 단기적인 이익을 내기 위해 인권이나 국가 안보의 신념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팔란티어는 상장하면서 '차등의결권'이라는 강력한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했습니다. 창업자인 피터 틸, 알렉스 카프, 스티븐 코헨 세 사람이 가진 주식에 압도적인 투표권을 부여하여, 전체 지분의 아주 일부분만 가지고 있어도 회사의 핵심 의사결정을 영구히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은 "주주 자본주의에 위배되는 독단적인 구조"라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돈은 대중에게서 모으면서 경영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오만함으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팔란티어는 단호했습니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회사의 특성상, 적대적 M&A나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의 공세에 회사의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방패라는 논리였습니다.

3. 상장 장막이 걷힌 후, 재무제표가 던진 차가운 진실

직상장을 통해 월가의 참견을 최소화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정식 상장 기업이 된 이상 팔란티어도 매 분기 실적이라는 차가운 채점표를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상장과 동시에 그동안 비밀에 싸여있던 팔란티어의 재무제표가 대중에게 완전히 공개되었습니다.

장막을 열어젖힌 월가의 시선은 냉혹했습니다. 창업한 지 17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수천억 원대의 만성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매출의 상당 부분이 소수의 정부 기관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구조적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임직원들에게 주식으로 보상을 주는 '주식기반보상(SBC)' 비용이 너무 커서 실제 주주들의 가치가 희석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상장 직후 주가는 한때 40달러 선까지 치솟으며 광풍을 일으켰으나, 이내 실적에 대한 의구심과 성장성 정체 논란이 맞물리며 6달러 선까지 폭락하는 혹독한 성장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밀주의라는 신비주의 장막이 걷힌 자리에 남은 것은, 이 회사가 과연 장기적으로 돈을 벌어 주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기업'인가에 대한 냉정한 시장의 시험대였습니다.

💡 핵심 요약

  • 전통적 IPO 거부와 직상장: 월가 투자은행들의 수수료 카르텔과 기관투자자 편향적인 공모 관행을 탈피하기 위해 자금 조달 없이 기존 주식을 직접 증시에 상장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경영권 방어와 차등의결권: 단기 실적에 연연하는 월가 자본으로부터 국가 안보 및 장기 혁신 과제를 수호하기 위해 창업 3인방에게 영구적인 의결권을 몰아주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 상장 이후의 시장 냉대: 재무제표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만성 적자 구조, 주식기반보상에 따른 지치 희석, 정부 의존도 문제가 부각되어 주가가 폭락하는 혹독한 검증기를 거쳤습니다.

📢 다음 편 예고

다음 11편에서는 상장 이후 주가 폭락으로 위기에 처했던 팔란티어가 반전의 기회를 잡은 마스터피스 기술을 다룹니다. 전 세계 생성형 AI 열풍 속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을 기업 데이터에 완벽하게 이식한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의 기술적 메커니즘을 파헤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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